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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육우당 10주기 추모문화제/'시인' 육우당의 작품들

[육우당의 일기] 2003. 04. 02. 수, 2003. 04. 03. 목


2003. 04. 02. 수


초등학교 6학년 때 안네의 일기를 읽었는데 그땐 문득 이상하게 여겨졌어. 안네가 말하는 '키티'란 대체 누굴까 하고. 나중에 키티는 안네가 생각하는 가상의 친구라는 걸 안 난 안네가 혹시 정신병자는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지. 하지만 오늘에서야 키티가 누구인지 깨달았단다. 바로 키티는 안네 자기 자신이라는걸.

'또 다른 나'에게 키티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지 일기를 쓰는 나(안네)와 그 일기를 듣고 있는 또 다른 나(키티).


그래서 오늘부터 나도 '또 다른 나'와 대화를 시작하려 해. 그저 나 혼자 쓰는 일기가 아니라 나와 또 다른 나와의 '대화체 일기'를 쓰겠다는 얘기지. 난 너를 '이아(異我)'라고 부를게.


- 故 육우당 추모집 “내 혼은 꽃비 되어” 중.





2003. 04. 03. 목


이아야. 오늘 결심했어. 난 병역거부를 할 거야. 난 살인무기인 총을 잡지 않을 권리와 전쟁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물론 '이성애자 기피증', '단체 생활 부적응'이란 이유도 있고, 그리고 내일은 또 종묘공원에서 파병반대시위를 벌일 예정이야. 난 요새 보람을 느껴. 그 동안은 이반들을 만나봤자 매일 술 마시면서 식성* 얘기나 하고 서로 헐뜯고 싸우고 섹스하고... 이런 무의미한 것만 했었는데 동인련에서 일하면서 나도 이 사회를 위해 뭔가 일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 반전시위, 파병반대시위 때 동인련 사람들과 무지개깃발을 세우고 '동성애자들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다' 라는 걸 보여주는 것도 좋고. 내일은 또 시위를 해야 돼. 그럼 내일 다시 얘기하자. 오늘은 피곤해서 그만 쓸게. 그럼 잘 자. 


- 故 육우당 추모집 “내 혼은 꽃비 되어” 중.




* 식성: 남성동성애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로, 성적 혹은 감정적으로 끌리는 이상형의 스타일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