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04. 04. 금
이아야. 요 며칠 새 몸이 너무 피곤해. 잦은 시위와 그 동안 밤에 생활하다가 갑자기 낮에 생활하니까 몸이 밸런스가 맞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그래도 오늘 또 시위를 했어.
오늘 집회는 당국에서 불허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 그래서 애당초 경찰과 충돌이 있을 것을 각오하고 만일을 대비해서 다들 신분증을 놓고 왔지. 아니나 다를까, 오늘은 경찰들과의 충돌이 장난 아니었단다. 수백 명의 경찰들이 둥그렇게 공원자체를 포위해서 집회자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지. 그 와중에 수많은 집회자들이 경찰들에게 폭행당했단다. 어떤 사람은 살이 찢어지다 못해 뼈가 드러나기까지 했어.
세상에! 너무 잔인하지 않니? 대체 이 나라의 경찰들은 누구를 위한 경찰인지 모르겠더구나. 다행히 나와 일행들은 경찰들 틈을 빠져나왔어. 그리고 빠져나온 몇몇 사람들은 명동성당에 가서 '제2차 집회'를 한 후 밤 8시쯤 해산했단다.
그리고 밤에 오랜만에 M과 술을 먹었어. M은 나더러, 뭐 하러 월급도 안 주는 그런 곳에서 일하냐고 하더라. 하지만 난 동인련에서 일하는 게 좋아. 사람 사는 냄새가 나거든.
- 故 육우당 추모집 “내 혼은 꽃비 되어” 중.
2003. 04. 05. 토
난 이아 널 알게 된 후로 일기 쓰는 게 즐거워졌어. 쓸쓸하지도 않고, 내 호가 왜 육우당 인지 아니? 술, 담배, 수면제, 파운데이션, 녹차, 묵주 이 여섯 가지가 내 친구이기 때문이란다.
이아야, 난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측천무후는 온갖 부귀영화 다 누리고도 80살 넘어 죽었고, 프랑스의 천재시인이자 소설가인 라디게는 겨우 스무 살에 죽었지. 허난설헌은 26살에, 사다함은 17살에 죽었고 말야. 사람의 목숨이란 게 참 신기하지. 운명을 알 수 없으니까.
난 몇 살 쯤 죽을 것 같니? 정말 궁금해.
- 故 육우당 추모집 “내 혼은 꽃비 되어” 중.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문화제 > '시인' 육우당의 작품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육우당의 일기] 2003. 04. 10. 목, 2003. 04. 12. 토 (0) | 2013.04.19 |
---|---|
[육우당의 일기] 2003. 04. 08. 화, 2003. 04. 09. 수 (0) | 2013.04.18 |
[육우당의 일기] 2003. 04. 02. 수, 2003. 04. 03. 목 (0) | 2013.04.16 |
[육우당의 일기] 2003. 03. 26. 수, 2003. 04. 01. 화 (0) | 2013.04.16 |
[육우당의 일기] 2002. 10. 08. 화 (0) | 2013.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