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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

[미디어스] “이름 없이 죽어간 성소수자 기억해 주세요” -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 기도회가 전하는 메시지

“이름 없이 죽어간 성소수자 기억해 주세요”고 육우당 10주기 추모 기도회가 전하는 메시지

 

 
▲ 25일 오후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청소년 동성애자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 기도회’ 장소 한쪽에는 고인들을 떠올릴 수 있는 물건들이 놓였다.(동성애자인권연대 제공)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 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죽은 게 아깝지 않다고 봐요.”

청소년 동성애자 육우당이 종교적인 이유로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회와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유서로 남기고 자살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극렬한 반발로 인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법안 발의가 좌초되는 등, 여전히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에 진통이 따르는 형국이다.

한쪽에서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연대하는 기독교인들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고(故) 육우당을 기억하는 기독교인들은 그의 기일인 25일 오후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청소년 동성애자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 기도회’를 열었다. 이번 기도회는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위원회가 지정한 추모주간의 두 번째 행사로 마련되었다.

“폭력·차별 미화에 예수님 이름 쓰지 말라”

  
▲ 25일 오후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청소년 동성애자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 기도회’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성소수자들의 사연을 위로하는 내용의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다.(동성애자인권연대 제공)

이날 기도회에 참석한 기독교인들은 “우리는 폭력과 차별을 미화하는 데 예수님의 이름을 쓰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했다.

이들은 “보수 기독교인들은 한때 예수님을 핍박하고 쫓았던 그 당시 종교의 지도자 세력 바리새인들을 떠올리도록 한다”며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에 예외가 있다고 말하며 성소수자를 가리키고 폭력과 살인까지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예수님은 언제나 약자와 소수자의 편에 서 계셨다”며 “차별받던 사람들의 곁에 가기를 주저하지 않으셨고 그 움직임으로 그들에 대한 편견을 씻어 주고자 노력하셨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완벽하게 차별을 막을 수는 없더라도 여성, 이방인, 장애인들을 대하듯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를 꿈꾼다”며 “그러한 미래에는 그 존중의 기초에 예수님의 이름이 사용되리라 믿는다”고 전했다.

“존재 드러내지 못한 채 죽은 성소수자를 기억하자”

이날 기도회의 취지에 대해 동성애자인권연대 정욜 활동가는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존재를 잘 드러내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에는 이름 없이 죽어간 성소수자 친구들을 함께 기억하는 시간을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의 말을 받아 동성애자인권연대 곽이경 활동가가 자살, 지병, 사고 등 갖가지 이유로 이른 죽음을 맞은 성소수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외로운 죽음을 위로했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성소수자 친구들을 보냈지만, 단 한 번도 성소수자의 얼굴로 그들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언어로 당신의 장례를 한 번도 치러 본 적이 없습니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곽이경 활동가의 목소리에 울먹임이 섞여들었고, 이내 장내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곽이경 활동가는 “우리의 장례식장에서는 당신의 아름다웠던 시절을 마음껏 추억할 수 있길, 당신의 마지막에 무지개를 깔아 줄 수 있기를 정말로 바란다”며 “우리가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슬퍼할 수 있기를, 무엇보다도 당신의 죽음이 존중받기를 바란다”고 거듭 말했다.

  
▲ 25일 오후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청소년 동성애자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 기도회’에서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가 축도하고 있다. 이날 기도회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되었다.(동성애자인권연대 제공)

고 육우당은 죽기 전 남긴 유서를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죽은 뒤에는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에 딴죽을 걸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사회에서는 아직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이날 추모 기도회 또한 사진 촬영이 금지된 가운데 조심스럽고 조용히 치러졌다.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위원회는 추모 기도회 외에도 시조시인이 꿈이었던 고 육우당의 뜻을 기리고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획된 ‘육우당 문학상’ 공모전, 청소년 성소수자 거리 캠페인 등의 행사를 진행한다. 추모 주간 중 가장 큰 규모로 치러지는 행사인 추모 문화제는 오는 27일 오후 7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

  
▲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 위원회는 지난 22일부터 오는 28일까지를 추모주간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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