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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

[한겨레] 소년의 자살 10년 지났지만…동성애 따가운 시선은 여전

소년의 자살 10년 지났지만…동성애 따가운 시선은 여전


‘육우당’ 10주기 추모위원회 회원들이 22일 서울 종로구 송월길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문용린 교육감에게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육우당은 19살이던 2003년 4월25일 성적 소수자에 대한 기독교계의 비난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7일 육우당 10주기 추모문화제
“학교서 차별 심하다” 답변 54%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추진
보수 기독계 반발로 좌초위기

소년은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소년과 같은 신을 믿는 이들이 소년을 ‘악마’라고 했다. ‘소녀’ 대신 ‘소년’을 사랑한다는 단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2003년 4월25일, 윤아무개(당시 19살)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성애자임이 알려진 뒤 더 머물 수 없던 학교를 떠나 마지막 위안을 얻었던 성소수자 단체의 사무실에서였다.

“죽은 뒤엔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 ‘나는 동성애자’라고요. 더 이상 슬퍼할 필요도 없고 그로 인해 고통받지도 않아요.” ‘육우당’이라는 별명으로 성소수자들에게 잘 알려진 윤군은 유서에 짧은 생의 고통을 또박또박 새겼다. 독실한 천주교도였던 윤군은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계의 비난 앞에 크게 절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4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동성애자를)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심판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7조의 ‘(청소년) 유해매체 심의 기준’에서 ‘동성애’를 명시한 조항이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반발한 성명이었다.

해당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성소수자 운동에 깊이 개입했던 윤군은 한기총의 성명이 나온 지 20여일 만에 자살을 택했다. “죽어서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몰지각한 편견으로 한 사람을, 아니 수많은 성적 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반성경적·반인류적인지”라고 그는 유서에 적었다.

25일이면 윤군이 숨진 지 10년이다. 윤군이 바라던 대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상 ‘동성애’ 조항은 이듬해 4월 삭제됐지만 성소수자들을 향한 차별과 배제의 시선은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지난해 7~8월 청소년(20살 미만) 성소수자 221명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학교에서 성적 지향 또는 성별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이 심하다’고 답한 이들이 54.3%로 절반이 넘었다. 주관식 응답에서 청소년들은 “동성애는 정신병이다”, “에이즈 발병 원인은 동성 간 성관계” 같은 말들을 차별 사례로 꼽았다.

이런 가운데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나이, 병력 등 모든 조건에 따른 차별을 방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마저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로 좌초 위기에 놓였다. 성소수자 단체들은 “22~28일 육우당 추모주간 동안 보수 기독교와 우익 세력의 혐오 공세 속에서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으로 차별금지법 입법 필요성도 알려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동성애자인권연대 등 성소수자·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육우당 10주기 추모위원회’는 25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을 모아 추모 기도회를 열 계획이다. 토요일인 27일에는 대한문 앞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진행하는 추모문화제를 연다. 시인의 꿈을 못 이룬 윤군의 뜻을 기려 이달 1~14일 ‘제1회 육우당문학상’ 공모도 진행했다.

정욜 동성애자인권연대 대표는 “‘성적 지향’ 조항을 포함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는 등 변화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를 반대하는 이들의 가치 갈등이 공존하는 시기다. 육우당이 떠난 지 10년이나 지났지만 갈등은 더 심해지고 노골적인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한겨레포커스] “죽음 뒤엔 동성애자라 당당하게 말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