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당이 떠난 지 10주기가 되는 해에 마침내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제정되었습니다. 어쩌면 조금 늦은 감도 있지만 아마도 그건 비로소 우리가 그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껴안을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육우당이 스스로 삶과 죽음을 뒤바꾸며 우리에게 남기려 한 것이 슬픔이나 좌절이 아니라 분명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가능하다는 열망과 의지의 메시지였음을 기억하려 합니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의 살아 생전의 꿈을 ‘문학상’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의 꿈으로 나누려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첫 회라 많이 생소하고 작은 문학상에 63편이라는 기대치를 뛰어넘는 많은 작품이 들어와 놀랍고 기뻤고, 그래서 무엇보다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심사위원으로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물론 전반적으로 응모작의 문학적 완성도에 아쉬움도 없진 않았지만 아마도 너무 짧은 응모 기간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런 부분은 앞으로 ‘육우당 문학상’이 2회, 3회를 거듭해나가면서 더욱 나아가기라 믿기에 첫 해에는 시, 소설, 수필 등 장르를 고려해 골고루 수상작을 선정하였습니다.
심사는 예심과 본심으로 나누었으나 예심에서 작품을 추려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작품을 본심의 네 명의 심사위원이 다시 검토하여 좋은 작품이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이중 장치를 두었고, 수상작은 심사위원들이 몇 시간동안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토론을 하여 선정하였습니다. 심사 기준은 문학상인만큼 당연히 문학적 완성도와 깊이를 우선시하였으나 한편 육우당 문학상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고려해 다시 두 가지 기준을 더 잡았습니다. 첫째는 성적소수자들의 일상의 삶이 잘 담겨있는가입니다. 상상하는 것과 추측하는 것은 다르며, 피상적인 접근과 추상적인 표현으론 소수자의 삶은 잘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소재와 주제에 대한 작가의 이해의 정도는 읽는 이에게 그대로 드러나지요. 무엇보다 성적소수자 독자들이 읽었을 때 ‘이건 내 이야기야’라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이 육우당 문학상을 통해 많이 배출되길 바라기에 이 점을 중요하게 심사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성적소수자, 특히 청소년 성적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대한 문제의식이 작품에 잘 녹아있는가입니다. 이런 문제 의식은 충격적 사건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닐 텐데 응모작 중에 유난히 죽음과 극단의 폭력을 다룬 작품이 많아 놀랐고, 이에 비해 그 차별의 구조에 대한 작가 나름의 분석이나 인물의 심리는 이야기 속에 세밀하게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은미의 ‘깊은 밤을 날아서’는 눈에 띄는 수작으로 별 이견없이 당선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술에 취하면 노래하는 나무와 함께 소년과 도련의 만남을 배치하는 상상력이 돋보였고 안정적인 표현력으로 이야기는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수작은 오랜 토론 끝에 다섯 편을 뽑았습니다. 이재영의 ‘병균’은 전형적인 얼개라는 점에 아쉬움은 있지만 동성애자를 향한 학교 폭력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병균 옮는다’는 혐오를 잘 포착해 다루었다는 점에서, 김현중의 ‘아직 말할 수 없어’는 에이즈란 소재를 형과 동생,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로 담담하게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낌의 ‘아메리카노’는 커밍아웃하는 순간의 긴장과 그 뒤의 허무함을 제목 그대로 한 잔의 쌉싸름한 아이스커피처럼 잘 그려낸 점이 좋았고,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담은 노랑사의 ‘아프로디테의 소년’은 읽은 후에 여운이 남는 아름다운 글이었습니다. 시 부문으로는 눈앞에 마치 다정한 두 연인이 서있는 듯 경쾌하고도 사랑스러운 시조인 모리의 ‘에스컬레이터가 좋더라’를 비롯 연작으로 느껴지는 ‘벚꽃 길 용기’와 ‘치과’ 등 5편의 시를 묶어 하나로 선정하였습니다.
인권단체로서 총 상금 100만원의 문학상을 제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뜻깊은 자리를 만든 ‘동성애자인권연대’에도, 또 입장을 바꾸어보면 출판사와 같은 문학과 관련있는 권위있는 곳이 주최가 아니라 인권단체가 주최하는 문학상인데 기꺼이 작품을 내어준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육우당 문학상의 계속적인 발전을 기원하며 심사평을 마칩니다.
- 네 명의 심사위원을 대신하여
한 채윤(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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