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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육우당 10주기 추모문화제/제1회 육우당 문학상

[제1회 육우당 문학상 우수작]<아프로디테의 소년>

노랑사



다리 위에 서있는 남자의 모습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는 내가 알고 있던 특정한 인물이 아니다. 단지 나의 감각을 자극시키는 신체적인 조건들을 충족한 하나의 대상일 뿐으로 우연히 나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남자의 셔츠위로 드러난 가슴 굴곡에 나는 셔츠 아래 가려진 그의 단단한 육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의 넓은 어깨와 발달된 팔의 근육은 그를 견고하고 정밀한 하나의 구조물처럼 보이게 했다. 그 구조물 사이엔 내 몸의 구멍을 채우고 나를 희열에 차게 할 단단하고 거대한 물건이 달려있을 것 같았다.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그의 육체가 내 시야에서 부피를 키워가면서 나의 욕망도 부풀었다. 하지만 나의 욕망과 그의 육체는 평행하는 운동이었다. 이내 허전함과 외로움이 그로부터 나를 차단하였다. 그러자 내가 바라보던 도시의 인상들로부터 나는 홀로 떨어져 나간 기분이 들었다. 다리 위 가로수의 흔들리는 나뭇잎과 빌딩 외벽의 창에 비친 저녁의 햇빛 속에서 나란 존재는 하나의 미세한 먼지조각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속이 매스껍고 어지러웠다. 그 때 그 남자의 머리 위로 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그 새는 분명 ‘바다직박구리새’ 였다. 내가 엄마의 몸에서 나던 냄새를 찾아 바다를 떠돌아다녔을 때 흔히 보았던, 여수시의 검은 모래 해변에서도 보았던 새. 해안가에 서식하는 새가 도심 속에서 목격되는 것은 흔한 우연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리 위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결에 남자의 모습이 흐릿해지자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나의 발이 모래에 잠기며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어렸던 내가 엄마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있으면,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냄새에 나는 정신이 흐려지곤 했다. 축축하면서 서늘한 감촉의 냄새에 나는 물미역이나 바닷바람을 생각했다. 나는 엄마의 다리 사이 깊숙이 얼굴을 묻고 코를 킁킁대거나 손가락을 넣어 내가 생각한대로의 감촉이 느껴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그녀의 무릎에 기대 누워있기 어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올리고 누워있으면 말없이 그 냄새를 맡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하루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 몸에서 바다냄새가 나.]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며 웃더니 조심스럽지만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때로는 벌거벗은 몸으로 거울 앞에 서있기도 했다. 작은 모래 알갱이 같던 젖꼭지와 배꼽, 그리고 다리 사이. 손으로 어깨에서 손목으로, 가슴에서 배 아래로. 발에서부터 배꼽까지 몸을 쓸어내리고 올리다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코 밑에 대보았다. 하지만 손가락에는 어떤 냄새도 걸쳐있지 않았다. 그래서 웅크리고 앉아 등을 휘어 머리를 다리 사이 가까이 밀착시켜도 보았지만 그녀와 같은 냄새는 내 몸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절망이었다. 절망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후의 허전함이나 빈자리가 남기는 쓸쓸함과 같은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은 언젠가 그녀와 함께 갔던 바닷가의 모래에 묻혀있던 소라껍데기를 떠올리게 했다. 소라껍데기 안에선 파도소리가 들린다는 어른들의 말을 생각하면서, 빈소라는 내가 보고 서있는 바다의 입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바다의 입은 어둡고 푸른 바다의 끝에서부터 내게 어떤 말을 들려줄 것인가 기대하면서 귀에 조심스럽게 가져갔다. 하지만 들리는 건 파도소리와는 달랐다. 파도가 모래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다가 다시 내려가는 것,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지평선의 크기만큼 거칠게 불어오던 바람 같은 것. 빈 소라의 세계는 부서지고 흔들리며 뒤섞이는 소리 너머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적막의 세계였다. 그 적막이 내게 주었던 깊이와 두려움에 나는 빈 소라의 세계에 홀로 갇혀버린 것 같았다.

내가 열네 살이 되어 중학교에 입학을 하였을 때 적막은 불안이 되었다.

교실 안은,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사내아이들로부터 나온 아카시아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있었다. 그 냄새는 간혹 나를 열에 뜨게 했고 그러면 내 얼굴은 부끄러움에 상기되곤 했다. 때로는 교실 안이 먼지로 가득 차서 탁하고 습한 땀 냄새가 뒤섞여 있을 때에도 비릿하면서 달고 따뜻한 아카시아 꽃의 냄새는 선명하였다. 그러면 나는 몸이 꼬이듯 비틀리며 달아올랐다. 그런 어느 날의 밤에 나는 이른 잠에서 깨었다. 내가 내뱉는 숨과 나의 몸을 더듬는 나의 손으로부터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에 숨을 가쁘게 쉬는 것도 힘이 들었다. 그러다 단단하게 서버린 나의 몸이 나의 뜨거운 기운들을 뿜어내자 밀려오는 아찔한 기분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팽창해서 커버린 나의 몸이 폭발하기 위해 거칠게 움직이다 한순간에 무너지고 사라지며 작아지는 움직임에 대한 감각들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때 나는 두려우면서도 경이로움을 느꼈다. 처음의 수음 이후, 나는 늘어가는 죄의식 속에서 처음의 느낌들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수음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행위가 반복되어지면서 나는 차츰 무료함을 느꼈다. 처음과 같은 절정과 충만함은 사라지고 단지 배설하기 위해 되풀이되는 몸의 움직임이 쾌락이 될 수 없었다. 내 몸은 새로운 자극들을 열망하고 있었다. 그 열망은 나의 학우들을 향한 열망이었다.

그들의 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들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하였을까. 그들은 그 순간에 어떤 표정을 짓는가, 어떤 소리를 내뱉는가. 그들도 나와 같은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더 강한 자극들을 원하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몹시 두근거렸고, 그들의 몸에 가까이 밀착된 나의 몸을 상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 내 몸에서도 그들과 같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들의 냄새에 취해 그들의 몸을 탐닉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무척 혼란스러웠다. 향기로웠던 아카시아 냄새가 나에게서도 난다는 것이 나를 병든 나무처럼 생각하게 했다. 마치 제 꽃이 아닌 다른 꽃을 피어낸 나무가 된 것 같았다.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 불안함을 느꼈다. 나는 불안이 만들어낸 공포와 혼란으로 인하여 금이 가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비추어 볼 수 없는 거울 앞에 선 것 같았다. 내 몸과 그것을 지켜보는 내 생각들은 언제라도 깨져서 바닥으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는 그어지고 터져있는 유리와 같았다.

난 나를 보는 이들이 내가 나를 보는 것처럼 이상하다 여길까 숨죽이며 예민함에 곤두서며 지내야만 했다.

 

[엄마. 난 내가 잘못 태어난 것 같아. 이건 원래 내 몸이 아닌데 다른 몸으로 태어난 것 같아. 나도 엄마와 같은 바다가 되고 싶어.]

 

그 때 나는 엄마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어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녀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어떤 생각으로 미동도 없이 나를 보며 눈물을 흘렸는지도 나는 모른다. 그녀에게 고백 이후 내가 갖고 있던 고민들과 그로 인한 혼란은 사라졌다. 하지만 엄마와 나의 관계는 누군가 태풍으로 인하여 고립된 섬에 갇혀버린 듯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떨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또 다른 외로움과 상실감을 주었지만 그녀와 내가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에도 그녀는 관망하였다. 그건 그녀가 판단하는 능력을 일시적으로 잃어버릴 만큼 나에 대한 슬픔과 내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갇혀버린 탓이다.

집을 나온 나는 특정한 곳을 생각해서 움직이지 않았다. 버스와 기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만큼 움직이며,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을 때에는 걸을 수 있을 만큼 걸었다. 그러다 여수에 도착했을 때 차를 태워준 운전자로부터 모래가 검은 곳이 있다는 것을 듣고 검은 모래 해변을 찾아갔던 것이다.

한여름 낮의 해변은 피서객들로 북적거렸다. 바다는 해변을 따라 형성된 노점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사람들의 소란스럽게 떠들어대는 소리에 질려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모래사장에서도 사람들이 적게 모인 곳에 자리를 잡고 맨발로 앉아 있었다. 발가락사이로 들어와 새어나가는 모래처럼 내가 있던 세계에서 나란 존재는 너무도 쉽게 무너지며 사라진 것 같았다. 해가 저물어 해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밤에 간혹 해변으로 나와 폭죽을 터트리며 노는 무리도 있었지만 사경이 되었을 때엔 해변엔 나 하나였다. 바다와 하늘은 경계를 나누지 못할 하나의 어둠이었다. 어둠에서 출렁거리는 검은 물결은 나에겐 어둠속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처럼 보였다. 나는 검은 일렁임을 보다가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밀려들어와 빠져나가는 거친 힘에 내 몸은 점점 깊이 잠겨들었다. 그때 나는 파도가 나를 휩쓸고 삼켜버려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목까지 물에 잠기자 어떤 망설임에 허우적대며 뭍으로 올라갔다. 나는 나를 어둠으로 사라지게 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다. 다만 어둠이라는 것이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내가 순간적으로 매혹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검은 일렁임을 보았다. 내가 집에 남겨두고 온 것들이 생각났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리웠다. 나의 모습과 모든 일들이 사실이 아니라 소설을 읽고 있는 거라 생각하고 싶었다. 나와 그들이 서로의 존재만으로 슬픔을 느끼며 살아가야하는 것이 참으로 지독하다 생각했다. 이것이 소설이라면 떨어진 아프로디테의 머리카락을 에로스가 주워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에게 넘겨주었다. 이 여인은 이 머리카락을 태어난 자신의 아이에게 매달아 주었다. 이 아이는 아름다웠으며 가려지고 은폐된 것들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었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도 아름다웠다. 그래서 아이가 보는 것도 아름답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프로디테는 노여웠지만 에로스가 가여워 아이에게 남겨진 자신의 머리카락은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아이를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보게 하는 벌을 주었다.

이것이 소설이라면 나는 사람들에게 아름답지 못한 존재로 남겨지겠지만 나는 내가 보는 것들을 아끼며 사랑하기 위해 살아가야 한다.

나는 검은 일렁임을 본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삶의 긍정을 본다.

 

남자의 모습은 뒤로 남겨져 희미한 형체가 되었다. 문득 어렸던 내 모습이 생각나자 발걸음이 아련해졌다. 시간이 흐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갔다.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또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한 친구는 밤에만 피어 있다. 술집거리에서 짙은 화장을 하고 속이 드러나는 옷을 입으며 일하지만 나를 보면 반갑다는 듯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어떤 친구는 가짜 가슴과 가짜 생식기를 달았다며 사람들의 조롱을 받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몸을 팔다가 사고를 당해 이른 나이에 떠나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들을 불쌍하다고 여기거나 지저분하다 말하지만 나에겐 모두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세상에 아름답지 못한 것은 없다. 뒤틀리고 은폐되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을 뿐이다. 내 정신은 아프로디테의 머리카락으로 묶여 있다. 난 아름답다.